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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와 기능을 품다, 지프 어벤저 EV ALTITUDE 장기 시승기

지프의 어벤저 EV Altitude 트림을 장기간 시승했다. 어벤저는 스텔란티스 그룹의 기술 협력으로 탄생한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 자동차로 알려진다. PSA 그룹에서 소형 전기차를 위해 개발했던 'E-CMP2'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되며, 최초의 전기차임과 동시에 가장 작은 크기를 지닌 컴팩트 SUV로 포지셔닝 된다. 소형차 위주의 자동차 시장이 형성된 유럽과 아시아 등지를 공략하겠다는 의미, 본격적인 판매를 개시했던 2023년에는 단번에 '유럽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이례적인 성과를 달성해냈다.

지프는 뛰어난 기동성과 실용성을 전제로 하는 정통 SUV 전문 브랜드다. 동시에 과시주의에 근간을 두기도 했던 북미 자동차 산업의 역사를 거닐어 왔고, 이는 기능주의적 사고가 뚜렷했던 유럽 자동차 산업과 대비를 이룬다. 다만 현대 시대 자동차 산업은 표준화와 공용화가 중시되어왔다. 때문에 원천 기술을 더욱 다양한 차종에 적용하고 흡수하기 용이해졌고, 결과적으로는 자동차의 성격 자체가 획일화되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스텔란티스의 사례처럼, 자동차 기업들의 인수 합병은 반대 구도에 있는 성격의 기업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에 유리할 수 있다.

특히 소형 전기자동차라는 분야는 높은 수익성을 챙기기 어렵다. 제품성보다는 경제성이 우선이 되는 경우가 많고, 중국 산업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지프는 E-CMP2라는 PSA의 공용 플랫폼으로 개발비를 절감하며 전기차 시장에 우선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인데, 신생 차종에 대한 신뢰도까지 높아지는 효과까지 있다. 지프는 그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반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소형 SUV가 필요로 하는 실용성과 재치 있는 디자인 요소, 이를 통해 유지 가능한 경제적인 가격은 유럽에서 어벤저 EV의 성공을 뒷받침했을 것이다.

시승 차량은 지프 어벤저 EV Altitude 등급이다. 국내 시판 차량 기준으로는 상위 트림에 해당된다. 전면 디자인에서의 차이는 프로젝션 타입 LED 헤드램프가 적용된다는 점, 헤드램프 자체는 DRL과 메인 모듈이 분리된 형태를 갖춘다. DRL을 높게 배치해서 차량 전고를 강조하는 부분은 지프의 공통된 패밀리룩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7대륙을 상징하는 7슬롯 그릴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차인만큼 그릴 표면은 막혀있지만, 그만큼 더욱 지프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넓은 면적의 언더커버 또한 전통적인 SUV의 감성을 연출해 준다.

어벤저 EV의 체구는 예상보다 더욱 아담한 크기였다. 차체 전장에 비해 휠베이스가 길고 전고가 높다 보니, 단순 비율상으로는 더욱 커 보이는 인상이 있다. 측면 디자인에서는 앞뒤 휠 하우스를 강조하는 볼륨 라인이 특징, 사선 형태의 벨트라인과 역동적인 C필러 디자인이 세련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시승 차량 Altitude 등급의 경우 18인치 알루미늄 폴리쉬드 휠이 적용되어 있다. 그 밖에도 파노라마 선루프와 블랙 컬러 루프, 블랙 컬러 아웃사이드미러가 적용된다. 대신에 루프랙은 생략된 모습이다.

전면보다는 뒤에서 볼 때 체구가 더욱 작아 보인다. SUV 치고 전고가 정말 낮은 편인데, 전폭까지 좁다. 그만큼 개성적이고 귀여운 디자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특히 테일램프는 '제리 캔'을 형상화한 독특한 그래픽으로 지프만의 헤리티지를 자극했다. 직선 위주의 디자인 마감이나 두꺼운 언더 플레이트, 그리고 전기차를 암시하는 'e' 형태의 엠블럼이 부착된다. 그 밖에도 어벤저 EV에는 자연과 모험, 브랜드를 형상화하는 다양한 '이스터에그' 패턴이 적용되어 있어 디자인에 대한 더욱 강한 흥미를 품게 만든다.

실내 공간이다. 엔트리급 SUV인 만큼 화려한 공간감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탁월한 공간 활용성에서 지프의 브랜드 센스를 느껴볼 수 있다. 수평적인 형태의 대시보드에는 계단식으로 수납함을 마련해 두었다. 센터 콘솔은 중심부 주행모드와 EPB 버튼을 제외하면 전부가 수납공간, 중앙 컵홀더의 경우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 한편 공조장치, 시트 열선 같은 조작 버튼들은 센터패시아에 깔끔하게 나열된 형태를 갖춘다. 변속기는 그 아래에 버튼식으로 배치했고, 멀티펑션 스티어링 휠을 통해 미디어 등 인포테인먼트 조작도 가능하다.

계기판은 10.25인치 컬러 디지털 클러스터가 기본이다. 다양한 테마와 직관적인 UI가 특징, 칼럼 레버 양 끝단 버튼에서 세팅 가능하다. 센터 스크린의 크기도 10.25인치로 다양한 조작 기능과 무선 폰 프로젝션을 지원했다. 스크린이 가로로 긴 비율이다 보니 화면 자체가 크진 않아도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아울러, Altitude 등급에는 1열 가죽 시트와 운전석 6방향 전동시트 및 럼버 서포트, 심지어 운전석 마사지 시트까지 탑재되어 있다. 대시보드에는 멀티 컬러 앰비언트 라이트까지 추가되면서 더욱 세련된 실내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뒷좌석 공간이다. 공간부터 기능까지 1열 위주일 수밖에 없는 차량인 만큼, 편의성에 대한 큰 기대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SUV 형태의 차체는 레그룸과 헤드룸 높이 확보를 도와 생각보다 편안한 시트 포지션을 만들어 준다. 편의 기능으로는 USB 타입 충전 포트가 유일, 선루프도 2열 공간까지 비춰주지는 않는다. Altitude 등급은 핸즈프리 리프트 게이트 기능까지 탑재되었다. SUV에서는 큰 편의가 되어주는 부분, 트렁크는 바닥면 보드 높이 조정이 가능하여 리어 시트 폴딩 후 높이를 맞출 수 있다.

아담한 실내 공간에 담긴 지프 브랜드 고유의 감성은 예상보다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또, 전기차라는 특징으로 인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벤저의 E-CMP2 플랫폼의 정확한 구조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해당 플랫폼을 활용한 푸조의 소형 EV의 경우 시트 아래에 배터리를 밀집시켜 레그룸 공간을 유지하는 구조를 보인바 있다. 어벤저 EV도 마찬가지, 시트 포지션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전원은 일반적인 푸시 타입 버튼, 변속기를 D 단에 두면 차량을 부드럽게 크리핑 한다. 아쉽게도 회생제동 'B'단에서 완전 정차는 불가능했다.

어벤저 EV에는 115Kw 급 전기 모터가 탑재되어 앞바퀴를 굴린다. 단순 환산으로는 약 154Hp 수준의 최고 출력과 27.5Kg.m 수준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며, 1단 감속기가 맞물려 선형적인 가속감을 보여준다. 원래 지프라는 브랜드가 그렇듯 온 로드에서 퍼포먼스를 강조하진 않는데, 기동성을 위해서라도 높은 출력의 엔진을 탑재해오긴 했다. 어벤저는 그것보다도 훨씬 도심형에 가까운 SUV로 출력 수준은 딱 적정선에 머문다. 전륜구동 특성상 모터 출력을 무리하게 높여도, 트랙션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속력 차이는 미비한 법이다.

주행과 관련하여 에코, 노멀, 스포츠 등 일반적인 세팅이 가능하다. 주행 모드에 따라 정직하게 엑셀 반응이 변화하는 느낌이었다. 에코 모드로만 주행해도 일상적인 가속과 반응에 있어서는 충분하다. 대신 스티어링 휠의 기본 세팅이 다소 가볍다 보니, 묵직한 주행 감각을 원한다면 스포츠 세팅이 적합했다. 승차감은 약간의 단단함을 제공하는 세팅, 후륜 멀티링크 구조로 생각보다 노면에 대응하는 제법 유연했다. 롤 스트로크는 짧다고 표현할 수 있겠으나, 최신형 CUV치고는 그냥 적당한 수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승 중에는 고속에서의 퍼포먼스가 가장 인상적인 차량이었다. 시속 100Km 이상으로 속력을 올리면 의외로 핸들링은 더욱 묵직해지고, 차체는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해 준다. 고속 선회나 회피 기동에서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 휠베이스가 짧다 보니 와인딩 코스에서는 나름의 운전재미도 내포한다. 가볍고도 항력을 많이 받는 소형 SUV인데, 기대 이상의 안정성과 반응성을 보여주었다는 뜻이다. 시승 기간 중 폭우도 내리고는 했는데 트랙션은 안정적이었다. 전기차인 만큼 정숙성은 기본 이상, 생각보다 고속에서의 풍절음도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았다.

차량에 부가적인 옵션이 많지는 않다 보니 그만큼 기본기에 대해 더욱 면밀하게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전기차의 높은 무게를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세팅, 그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있는 주행감은 유럽 시장에서 어벤저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울러 Altitude 등급은 주행보조 장비까지도 부족함 없이 담겨있는 사양이다. 기본 제공되는 어댑티브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스톱&고, 여기에 차로 유지 보조 장치가 도입되면서 항속주행에서는 꽤나 큰 도움이 된다. 참고로 상위 등급은 주차 센서까지 8개로 확대되어 탑재되었다.

또, 어벤저는 실제 주행 전비가 높게 나와주는 전기차 중 한대다. 공인 전비가 5km/kWh,로 약 54kWh 급 배터리를 탑재한 시승 차량의 복합 항속거리는 292Km 수준이다. 최신 전기차 치고는 아쉬운 거리일 수 있는데, 온갖 악조건을 무시한 300km 가량의 주행 결과 실전비는 6km/kWH로 기록된다. 개인적으로 더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물론 겨울에는 효율이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300Km 이상은 가볍게 주행 가능한 성능이다. 실제 100% 충전 시의 예상 가능 주행거리는 400Km로 표기된다.

최악의 조건에서 6Km/kWh 수준이라 언급했다. 마음먹고 전비 운전을 한다면 8Km/kWh 수준의 전비도 가능해 보인다. 전력량 자체가 크지 않은 만큼 공차중량이 가벼운 덕분인 것 같다. 약 1585Kg으로 전기차에 SUV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경량한 무게와 같다. 전비가 높은 만큼 실제 유지 비용은 더 크게 절감되는 효과가 생긴다. 차량에는 히트 펌프 시스템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기 때문에 겨울 철도 감소 폭이 크진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80%까지 충전시간은 약 24분으로 짧고, 작은 배터리 용량의 이점은 예상외로 다양했다.

지프 브랜드 차량인 만큼 '셀렉터레인' 기능도 포함되어 있다. 모래, 진흙, 눈길 등 험로에 따른 주행모드 설정이 가능한데, 동급 전기차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기능이다. 내리막 주행 보조 장치도 마련되어 있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LED 헤드램프의 야간 시야였다. 전방 안개등은 코너링 기능까지 포함되어 어두운 길도 치밀하게 비춰주는데, 정말 체감이 갈 수준으로 헤드램프 조사 성능이 뛰어났다. 장시간 주행에 피로도를 낮춰줄 안마시트까지, 기본기에 충실한 옵션 구성은 유럽 지향형 CUV답다.

어벤저의 외관 디자인은 어디에서든 개성적인 존재감을 펼쳐낸다. 실제 범퍼의 디자인은 동급 최고의 진입 및 이탈 각도를 고려했다고 하며, 앞서 언급했던 이스터에그들이 재치를 더했다. 전면 센서 부근에는 어벤저가 디자인된 이탈리아 토리노를 가리키는 나침반이 각인되어 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앞 유리창에 새겨진 망원경이나 은하수 패턴, 뒷유리의 산맥과 천장의 무당벌레 형상 등 이야깃거리가 정말 많은 디자인이다. 실용적이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은 실내 디자인까지, 지프의 아이덴티티를 효율적으로 물려받은 어벤저 EV였다.

지프의 어벤저 EV ALTITUDE를 장기간 시승했다. 브랜드의 뚜렷한 개성과 재치를 품은 외관 디자인은 소유욕을 자극했다. 그에 비해 인테리어 구성은 간결하다고 볼 수 있지만, 원래 지프가 그렇다. 기능적인 가치가 중심적이다. 많은 편의 기능이 탑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운전석 입장에서만큼은 오히려 동급 SUV보다 풍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뚜렷한 주행 안정성, 이에 기인하는 기본기였다. 생각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완성도가 높은 전기 차였는데, 재치 있는 디자인과 별개로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글/사진: 유현태

유현태

유현태

naxus777@encar.com

자동차 공학과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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