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자동차 시장에 대응하는 기업의 전략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뉘게 된다. 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거나, 라인업을 간소화하여 매몰비용을 최소화하는 대응이다. 토요타는 자사의 고급 세단 '크라운'을 브랜드화하며 다품종 소량 생산 체계를 지향하게 되었다. 한때 완성차 업체 중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하기도 했던 토요타 그룹은 'Just In time'전략으로 내수 자동차 생산 체계를 일신했고,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잠식한 바 있다. 자동차의 생산 과정에서 낭비되는 비용 절감도 한계가 있다. 대신 낭비되는 시간과 자원을 최소화하고자 했던 의도다.
2020년대 초, 대다수의 기업들이 내연기관 라인업을 간소화하고 전기차 역량을 강화하는 시기였다. 반면 크라운의 포트폴리오의 확장을 선택한 토요타의 전략은 트렌드를 역행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 이후에야 토요타는 2026년까지 10여 종의 전기차를 양산하겠다는 로드맵을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하이브리드에 대한 집중 투자가 옳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토요타의 자신감 역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산설비에 기인했을 것이다. 라인업 확장 전략은 축소되는 시장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소비의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크라운의 브랜드화는 총 4개 차종으로 진행된 바있다. 2022년 크라운 크로스오버를 최초로 공개했고, 세계 시장에는 '세단', '에스테이트', '스포츠'가 추후 출시될 예정이었다. 현재 한국 시장에는 '크로스오버'만 출시되었다. 크라운 크로스오버는 세단과 SUV의 장점을 섞은 퓨전 노치백 세단으로 분류된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 실적이 부진했던 준대형 세단 '아발론'의 포지션을 대체하기도 한다.
시승 차량은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2.5 HEV 등급이다. 크라운은 배기량 기준 2.4L 터보부스트와 2.5L 자연흡기로 구분되며, 옵션 사항까지 함께 묶여 있다. 엔트리 등급이 2.5 하이브리드 사양으로, 2.4L 사양은 싱글 터보와 수랭식 쿨러, 가변식 서스펜션 등등 고성능의 세팅을 지향한다. 아무렴, 하이브리드로서는 높은 연비를 갖추고도 가격대가 더 저렴한 2.5 HEV가 훨씬 경제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토요타의 최신 디자인 '헤머헤드' 룩은 귀상어의 머리를 형상화한 얼굴이다. 크라운 크로스오버도 마찬가지다. 전면부 엣지 라인을 장식하는 DLR과 앞트임 형태의 헤드램프가 꽤나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자아낸다. 라디에이터 주변부를 하이그로시 블랙 컬러로 마감하며 공격적인 인상을 품기도 했다. 전반적인 실루엣부터가 차체 중심부를 돌출시키는 형태고, 양 끝 부분에 큼지막한 에어 인테이크를 구현하여 더욱 상어 같은 날카로움을 강조한다. 범퍼 하단 가니시는 크롬라인으로 마감하며 차폭 감을 확대하고 스탠스를 보정해 준다.
전면 디자인만을 바라보면 영락없는 세단이었다. 하지만 옆모습을 바라볼 때 '크로스오버'의 특성이 나타난다. 일반적인 세단 대비 지상고가 높은 편이고, 차체 하부를 보호하는 스키드 플레이트까지 부착된 모습이다. 21인치에 달하는 큰 크기의 휠을 탑재하며 상대적으로 휠베이스가 짧아 보인다. 하지만 실제 차체 전장은 길어 보이고 덩치가 웅장하다. 전체적인 바디라인은 과감한 굴곡으로 입체감을 과시하고, 패스트백 형상의 C필러가 스포티한 분위기를 지향하고 있다. 플로팅 루프 스타일로 C필러를 디자인한 점도 특징적이다.
뒷모습은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수평형의 간결한 테일램프 디자인을 채택하고, 주변부를 블랙 하이그소리 색감의 가니시로 마감했다. 전면 디자인처럼 리어 엔드의 가장자리를 단이 있는 형상으로 디자인했다. 리어엔드가 SUV보다는 해치백과 세단의 경계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차고가 높게 디자인된 반면 윈드 실드 면적은 세단처럼 좁다. 이는 공기저항 감소와 적재용량 증가 모두를 충족시킬 것이다. 전체적으로 세단과 SUV, 쿠페까지 다양한 차종의 성격이 혼재된 크로스오버 '세단'이다. 흔히 떠오르는 SUV스타일의 CUV 와는 다르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전형적인 일본 차의 성격이다. 북미 시장의 정서가 반영되는 직관성 위주의 구성이다. 약 12인치 크기의 매립형 디지털 클러스터와 비너클 라인을 따라 센터 모니터가 자리 잡는다. 공조장치 등 버튼들이 직관적으로 배치되며, 플로어 시프트 타입의 기어 레버는 렉서스의 것과 유사하다. 수납공간 구성은 평범한데 넓은 천연가죽 시트가 참 편안했다. 전체적인 실내 소재가 화려하진 않아도 조립 품질이나 마감이 정교하다. 스티어링 휠에도 토요타 대신 크라운의 '왕관' 엠블럼이 부착된 모습이다.
전륜 기반의 준대형 세단답게 2열 공간은 상당히 여유롭다. 패스트백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지만, 시트가 두껍고 헤드룸도 넓다. 특히 파노라마 선루프 덕분에 공간감이 개선된다. 센터터널도 낮은 편이며 에어벤트나 열선 시트 등 기본 편의 장비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리고 암레스트의 부드러운 질감이 좋았다. 트렁크 공간은 바닥면이 낮고 평탄하여 활용도가 굉장히 뛰어나다. 시트 폴딩도 가능하나 평탄화까진 아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고 깔끔한 디자인이고, 친숙한 인터페이스 덕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시동 시 엔진이 점화되더라도 진동과 소음은 작은 편이다. 크라운 크로스오버는 토요타의 TNGA-K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된다. 이른바 직병렬 하이브리드 구조라고 칭해지는 토요타의 HEV 시스템에 최적화된다. 구동용 모터와 상시 발전용 모터가 별도로 탑재된 구성이 특징, 덕분에 주행 환경의 변화로 인해 나타나는 실연비의 저하가 최소화된다. 충전 잔량이 충분하다면 도심에서의 근거리는 EV 모드로 주행할 수 있다. 엔진이 점화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빠르게 전기 에너지가 회수된다.
크라운에 탑재된 2.5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은 에킷슨 사이클 방식으로 운동한다. 흔히 압축비에 비해 팽창비가 큰 사이클 운동이라 표현하는데, 연료 연소량을 줄여 효율이 소폭증가하게 된다. 반면 출력이나 소음은 다소 약화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변속기는 E-CVT가 탑재되었다. 유성기어와 모터 제어를 통해 구동력과 RPM을 배분하는 원리인데,역시나 효율성 증대에 유리한 세팅이다.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불쾌한 변속 충격이 느껴지지 않고 내구성 측면에서도 벨트풀리 방식보다는 안정적이다.
결과적으로 공인연비는 17.2km/L라는 훌륭한 수치로 인증받는다. 1845KG의 무게를 생각하면 상당히 뛰어난 효율이다. 자연흡기 엔진의 최고출력은 186마력, 최대 토크는 22.5kg.m로 무게에 비해서는 부족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략 120마력의 구동용 모터가 출력을 보조하기 때문에, 실제 제로백은 약 7초 후반대로 충분하다. 그리고 후륜 차축에도 구동 모터가 탑재된다. 덕분에 상시 4륜구동과 같은 끈끈한 트랙션을 경험할 수 있다. 동력분산식 상시 4륜구동으로, 토요타는 'e-four' 구동방식이라는 명칭을 지었다. 일반 AWD 대비 열효율이 상당히 높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굉장히 부드러웠다. 전륜 더블 위시본, 후륜 서스펜션은 멀티링크로 구성되었고 댐퍼의 감쇠력도 가벼운 편이다. 정확히는 체급에 대비해 승차감이 가벼웠다. 노면에서 올라오는 작은 진동들은 전부 부드럽게 걸러주고, 스티어링 휠도 가볍게 돌아가는 전형적인 컴포트 세팅이다. 최근에는 국산 준대형 차량들도 승차감을 단단하게 세팅하는 경향이 있어,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승차감에 빠져들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특유의 정숙성과 어우러져 오랜 항속주행에도 많은 피로가 누적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주행성이 크게 뒤처지지도 않는다. 무게 중심이 잘 잡혀있는 듯, 급 선회에도 심한 롤링과 피칭은 억제되어 있다. 스티어링은 뉴트럴 성향으로 생각보다 회전반경이 좁았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엔진이 점화되면 주행에 상시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이다. 다만 하이브리드의 특성상 가속감이 흥미롭지는 않다. 장점이자 단점으로 펀치력이 초반 가속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급가속 시 초반에는 속도계가 재빠르게 상승하지만, 이내 가속력은 둔화되었다. 전체적인 가속시간은 짧더라도 상대적으로 토크감의 저하가 빠르게 오는 느낌이다.
스포츠 모드를 택할지라도 스티어링 휠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물론 변화가 있긴 했다. 패들시프트가 빠져있고, 메뉴얼 모드는 6단으로 적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스포츠 주행보다는 항속주행 시 정숙성과 편안함이 돋보인다. 긴급제동 보조, 다이내믹 크루즈 컨트롤, 오토 하이빔 등 반자율 주행 기능을 통칭하는 토요타 TSS 옵션도 충분한 편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이전까지 답답했던 토요타의 인터페이스를 생각하면 훨씬 나아졌다. 직접 경험해보기엔 제약이 있지만, 2열 거주성 또한 만족스러운 준대형 크로스오버가 아닐까 싶다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2.5 HEV 를 시승했다. 전체적으로 토요타의 성격은 그대로 이어받는다. 그나마 디자인이 보기 좋게 날카로워졌고, 부드러운 승차감은 안정성 측면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크로스오버'보다도 '세단'으로써 마케팅에 접근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쿠페의 멋과 SUV의 실용성을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전적으로 아늑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세단이었다. 일반적인 CUV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것이다. 어찌 되었건 국내에서도 접하게 된 크라운의 복귀는 전적으로 환영하는 마음이다. 이색적인 디자인에서 정통파 세단의 감성을 되찾았다.
글/사진: 유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