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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왜 6개월마다 차를 바꿨을까?


1. 스티브 잡스와 번호판 없는 벤츠

번호판 없이 도로를 달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신고당하거나 경찰이 따라붙겠죠? 그런데 그런 쫄리는 일을 매일같이 했던 남자가 있습니다. 바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그는 수년간 번호판이 없는 벤츠 SL55 AMG를 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경찰에 잡히지 않았고, 법적으로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당시 캘리포니아 법은 차량 등록 후 6개월 동안 번호판 없이 운행해도 괜찮았고, 잡스는 이 허점을 이용했습니다. 똑같은 SL55 AMG를 리스로 6개월마다 교체하면서 언제나 번호판 없는 새 차를 타고 다닌 거죠. 법망은 피하면서도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잡스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단 하나, “번호판이 자동차 디자인을 망친다”는 미적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2. 미니멀리즘과 디자인 집착

잡스는 단순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단순함은 그의 철학이자 미학이었고, 그의 집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었죠.


애플 전 CEO 존 스컬리는 “잡스의 집엔 가구가 거의 없고, 아인슈타인 사진, 티파니 램프, 의자, 침대가 전부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제품 설계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하길 원했습니다. 맥 내부의 배선과 납땜, 회로기판 정리까지 직접 확인했습니다.

병상에서도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았고, 산소마스크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섯 가지를 비교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애플 패키지의 오픈 속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니 아이브는 애플 박스가 너무 빨리 열리지 않도록 수십 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제품 경험의 시작인 포장마저 그의 미학의 영역이었던 셈입니다.


3. 애플파크와 ‘잡스 루프홀’의 종말

잡스의 디자인 집착은 애플파크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단순한 사무공간이 아닌, 가장 아름답고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문 손잡이의 감촉만 18개월간 개발했습니다.


그는 단 하나의 틈도 없는 곡선형 유리를 원했고, 독일의 유리회사 Seele에 맞춤 제작을 의뢰해 유리창을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이런 완벽주의 덕분에 애플파크 완공은 여러 해 지연됐지만, 그에겐 모든 디테일이 중요했습니다.

그가 번호판을 붙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집착의 연장선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그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2019년부터 캘리포니아 주는 차량 판매 시 딜러가 임시 번호판을 반드시 부착해야 하는 법(AB 516)을 시행했고, 스티브 잡스가 이용하던 ‘루프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번호판조차 용납하지 못했던 잡스. 그가 그렇게까지 집착했던 이유는 작은 디테일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집착이 한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만들어낸 건 아닐까요?

조르디

조르디

joso@enc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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