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는 F1 그랑프리 유치를 위한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체결했다고 합니다. 지난 2월과 4월 추진했던 용역이 단독 입찰로 업체 선정 절차까지 넘어가지 못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네요. 참고로 수의계약은 경매나 입찰 등의 경쟁계약이 아니라 적당한 상대방을 임의로 선택해 계약을 맺는 것을 뜻합니다. 공정성이 떨어지고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 보니 공공기관은 일반 경쟁계약을 원칙으로 하죠. 경쟁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는 수의계약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조사 용역은 독일 서킷 전문 업체 틸케와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컨소시엄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약 금액은 3억 4400만 원.
틸케는 이스탄불, 아부다비, 제다, 상하이 등 여러 서킷을 디자인한 바 있으며, 전라남도 영암군의 F1 코리아 서킷을 설계하기도 했습니다. 송도, 청라, 영종 지역을 서킷 후보지로 두고 도심형 서킷 가능성을 분석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올해 하반기 완료될 것으로 보이며 그 이후 F1 유치를 위한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천시의 목표는 2027년 그랑프리 개최.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F1 그랑프리는 인천시 입장에선 도시 브랜드를 제고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더불어 관광 수입 증대와 지역 경제 활성화 등 경제적 파급 효과도 기대할 수 있죠. 이를 통해 국제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게 인천시의 생각인 것 같은데, 재정 부담과 실효성을 이유로 반대 여론은 변함없이 공고합니다.
도로 정비, 시설 구축 등 대회 운영에 필요한 인프라 예산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만큼 그랑프리 개최에 필요한 비용은 큰 재정적 부담이며,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음에도 애초 계획한 7년을 채우지 못하고 중단된 영암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겁니다. 진입 장벽이 높은 스포츠, 모나코나 라스베이거스처럼 특색 있는 배경의 부재, 소음과 교통 문제 등등. 더욱이 잠실에서 열렸던 포뮬러 E의 흥행도 저조했기에 최근 국내에서 F1의 인기가 높아졌다고 해도 리스크는 변함없다는 거죠.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전시성 행사로 시정을 이끌어가는 것으로 모자라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라고 말하며 인천시의 정책 설정과 진행 방식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었는데요. 지금 인천시가 보여줘야 할 건 설득력 있는 대회 운영 전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은?
어느 전문가의 말처럼 F1은 도시 브랜드를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빅 이벤트입니다. 1분 남짓한 광고로는 거둘 수 없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치 자체가 목표가 되어선 안됩니다.
전라남도는 도지사가 대회 조직 위원장을 맡고 5천억 원 이상을 투입하며 그랑프리 유치에 공격적으로 나섰고 결국 그랑프리를 개최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운영 적자가 늘어나면서 애초 계획했던 7년을 다 채우지 못했습니다. 70억 원의 흑자를 예상했었지만 적자만 690억 원이 넘었고요. 당시 재정적 감당 여부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고 중앙 정부의 동의 획득도 건너뛰며 논란이 많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러한 과오를 모를 리 없는 인천시일 텐데요. 당초 계획대로 최소 5년간 매년 성공적인 그랑프리를 개최하고자 한다면, 민간 자본 유치는 물론 중장기 재정 설계와 도시 운영과의 통합 전략을 토대로 시민 수용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F1 그랑프리 유치와 지속적인 개최를 위해 요구되는 고정 비용은 수백억 원대에 이를 겁니다. 해마다 늘어날 수도 있고요. 이를 지방 정부 재정만으로 감당하겠다면 적자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민간 스폰서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공적인 사례라 볼 수 있는 싱가포르의 경우, 호텔, 카지노, 항공사 등 민간 기업 스폰서로 참여합니다.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은 약 40% 정도라고 하네요. 공항, 관광, 자동차 산업과 연계해 투자자를 유치하고 그들에게 트랙 광고권, 네이밍 등 매력적인 스폰서십 운영 구조를 제시한다면 인천시 또한 부담해야 될 비용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스폰서를 구한다고 해서 적자를 무조건 피할 수 있다는 건 아닙니다. 멜버른 그랑프리도 첫 3년 동안은 적자가 계속됐다고 하던데요. 지속적으로 스폰서를 유치하고 그랑프리와 연계된 이벤트를 흥행시켜 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 문화 축제와 연계해 수익 창출 구조를 다양화하면서요. 인천시는 단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아닌 만큼 중장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밀하게 연도별 예산안을 구성하고 손익분기점 도달 목표 연도도 설정하며 관중, 관광객, 지역 경제 유입 등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한 평가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F1과의 계약 종료 후 구축했던 인프라 활용 계획도 마찬가지.
도심 서킷의 실현 가능성을 살펴보는 만큼 도시 운영에 있어 정교함이 요구됩니다. 도시 기능을 마비시키지 않으면서 레이스를 진행해야 하니까요. 대표적인 도심 서킷인 모나코는 상업 지역과 서킷이 혼재된 만큼 치밀하게 레이아웃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싱가포르 그랑프리는 출퇴근 시간과 겹치지 않는 야간 레이스로 진행되고요. 교통 혼잡을 최소화하는 구성에서 야경이 돋보이는 장면을 연출하겠다면 인천 그랑프리 또한 밤에 진행되는 것이 좋겠죠.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도심 레이스는 교통 통제, 소음, 환경 문제 등 시민들의 일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시민들의 의견을 묻고 듣는 자리를 마련해서 합의점을 도출하는 과정을 통해 공감을 얻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직접적인 불편을 겪는 이들에겐 지역 화폐 지급이나 상품권을 지급하거나 그랑프리 수익의 일부를 모터스포츠 체험과 교육 프로그램 개설 등으로 지역 사회에 이익을 환원하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진심이 닿기를
F1를 즐겨 본다면 레이싱 신(Scene)에서의 타미 힐피거가 낯설진 않을 거예요. 1991년 팀 로터스를 시작으로 페라리, 메르세데스와 함께 서킷을 달렸었죠. 그리고 곧 캐딜락의 파트너로 돌아올 예정이고요. 브랜드의 창립자 타미 힐피거는 10대 시절부터 서킷을 찾을 만큼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고 하죠.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무대의 챔피언들과 함께 꾸준히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해왔던 거고요.
서킷 위의 타미 힐피거를 패션과 스포츠를 아우르는 마케팅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한 남자의 열정이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도전에 호응하는 게 아닐까요? 진심이니까. 인천시도 진심이길 바랍니다.
글 이순민
사진 Formula 1